연기(緣起), 자연과 삶에 관한 예민한 독해
홍경한(미술평론가)
2014년 이후 김가빈의 작업은 약간의 변화를 맞이했다. 그가 작가노트에 기술한 것처럼 관심대상은 꽃과 나무 등에서 물고기로 바뀌었고 구성은 보다 내밀해졌다. 화사한 색과 감성적 여운, 칠보와 유리를 비롯한 석채 등의 다양한 재료들을 통한 작가만의 기법, 대상의 생동감 등은 그대로이지만 에너지의 흐름은 다소 결을 달리한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져 오는 것도 있다. 바로 우주와 자연, 인간들의 인연에 대한 서사라는 주제이다.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 또한 공통분모다.
흥미로운 건 ‘관계’이다. 작가는 지금까지 줄곧 이 화두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오랜 시간 관계에 대해 천착하고 있을까. 작가는 이를 불교에서의 연기법(緣起法)에서 찾는다. 여기서 말하는 연기법이란 우리가 흔히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인연법(因緣法)이라 칭하는 것으로, 인연이란 우연이 아니며, 존재란 결국 우연적 필연이자 세상에 모든 현상계를 관통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즉, 그게 무엇이든 관계에는 반드시 원인과 이유가 있다는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 생성과 소멸인 것이다. 산크리스트어로 ‘연기’의 어원이 ‘의존하다’와 ‘생겨나다’임을 상기하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헌데 김가빈은 필연적 관계에 의해 생성되는 삶과 우주만물의 관계 중 유독 사랑, 기쁨, 행복을 언급한다. 세상사엔 필시 악연도 있음인데 긍정성을 담보하는 명사들을 나열해 놓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몇몇 단어만으로도 사회를 읽는 작가의 가치관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너그럽게 포용하고 무아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태도가 그것이다. 작가 또한 “좋은 에너지와 열정을 담아 우리 모두와 동행하고 싶은 소망”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헌데 김가빈은 필연적 관계에 의해 생성되는 삶과 우주만물의 관계 중 유독 사랑, 기쁨, 행복을 언급한다. 세상사엔 필시 악연도 있음인데 긍정성을 담보하는 명사들을 나열해 놓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몇몇 단어만으로도 사회를 읽는 작가의 가치관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너그럽게 포용하고 무아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태도가 그것이다. 작가 또한 “좋은 에너지와 열정을 담아 우리 모두와 동행하고 싶은 소망”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근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물고기’이다. 물고기도 옛 작업들처럼 자연물의 일부이지만 훨씬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은 하나의 차이이다. 일례로 <Fish Rhapsody> 시리즈는 단색 혹은 다양한 컬러의 물고기들이 화면 가득 들어서 있는 작업이다. 이 공력 만만치 않은 연작은 물고기 하나하나 색을 칠하고 구워 낸 후 붙여 공간을 구축하고 리듬을 형성한다는 게 특징이다.
김가빈은 물고기에 천착하게 된 이유로 기원과 나눔을 말한다. 그는 “예로부터 다산의 상징으로 가문의 번창, 재물과 건강을 상징해 왔고 잘 때도 눈을 뜨고 있어 자신을 지켜주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예수가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기적의 일화가 있는 것처럼 물고기의 베풂과 나눔의 의미도 깃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그에게 물고기는 단순한 그림 소재가 아니라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김가빈은 물고기에 천착하게 된 이유로 기원과 나눔을 말한다. 그는 “예로부터 다산의 상징으로 가문의 번창, 재물과 건강을 상징해 왔고 잘 때도 눈을 뜨고 있어 자신을 지켜주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예수가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기적의 일화가 있는 것처럼 물고기의 베풂과 나눔의 의미도 깃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면 그에게 물고기는 단순한 그림 소재가 아니라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근작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형식이다. 그 중에서도 조형원리에 해당하는 밀도는 과거 작품 대비 탄탄해졌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도자의 청량함으로 뒤덮인 <Relation> 시리즈는 물론 항아리와 꽃의 조화로움을 담은 <Queen's vase>, 자연성을 고집해온 작가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You & I>도 마찬가지다. 이들 작품은 대상의 묘사를 넘어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고 작가 스스로의 존재성과 타자 간 원만한 호흡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특히 그의 일련의 작업들은 형식상 회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입체감과 더불어 오묘한 칠보 효과, 도자기 오브제를 통한 소재의 다양성도 간과할 수 없다. 추상적 도형과 익숙한 자연물의 원만한 호흡 역시 김가빈 만의 조형언어를 완성시키는 알고리즘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짚어보자면, 김가빈의 작품을 말할 때 구성에 관한 측면도 외면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공간구성은 촘촘한 듯 여유롭다. 이 공간은 시간성 위에 부여된 존재성으로 완성되는 것으로써, 공간자체의 특성에 표현의 적시성과 대상의 명확성을 바탕으로 일궈진다. 그것은 작가의 섬세한 조율과 공력에 의한 공간의 재조립 아래 개간되며, 추상적인 배경 위에 컬러를 입히고 다시 그 위에 손으로 하나씩 다듬어 똑 같은 모양이 없는 대상들을 얹힘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놓는다. 그렇게 해서 개간된 결과는 자연적이면서 도시적인 표상들로 나타나고 관계와 존재의 가치는 되새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조형방식은 차원이 다른 세계가 일체를 형성하는 형국으로 전개될 뿐만 아니라 익숙하지만 또 다른 층위의 감성을 타자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아무튼 그의 근작들은 변화의 흔적이 읽혀짐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것을 고귀한 것으로 치환하는 예민한 독해와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칫 형상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관계와 존재라는 주제의식을 질료와 색감, 이미지의 결합 등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획득된 결과는 관계와 존재란 어떤 사물의 개념과 관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외적 조응에 의해 그 자체로서 정립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며, 이타적인 마음과 삶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다루기 불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존재자와 존재를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토록 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관계성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김가빈의 작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한다. 단지 눈에 보이는 오브제로서의 결론이 아니라.
상생과 공존을 통한 평안과 행복의 랩소디
안영길(철학박사, 미술평론)
생존이라는 미명 아래 승자독식의 무자비한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비정한 현실 속에서 작가 김가빈이 지향하고 있는 상생과 공존이라는 화두는 예술이 담당할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김가빈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상생과 공존에 대한 의지 속에는 자신의 삶 속에 투영된 관계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김가빈은 이것을 불교의 인연법에 따른 성주괴겁(成住壞劫) 연기법(緣起法)의 ‘아름다운 관계’로 인식하여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조형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예술가의 책무로 여기고 있다.
작가 김가빈이 지금까지 차용한 다양한 소재와 기법, 재료들은 우주와 자연의 섭리 속에서 작가로서 깨달은 삶의 의미를 감성적 인식으로 표출하는 조형적 수단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꽃과 나무, 바다와 하늘, 물고기와 파도, 별빛과 꽃병 등은 인간에게 자연과 우주의 하모니를 들려주는 랩소디처럼 화면 속에 조율되어 있다. 칠보와 세라믹의 오브제, 석채와 골드, 아크릴을 비롯한 장지와 비단 등 평면회화의 틀을 벗어난 형식실험 또한 상생과 공존을 조형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지평의 확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연과 삶에 대한 관념적 인식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미적 감수성을 동반한 표현으로 관계인식을 넓히고 있는 작가의 역량도 남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귀와 행복을 상징하는 모란꽃, 풍요와 나눔을 상징하는 물고기, 평안을 상징하는 꽃병,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는 나비 등의 소재가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통해 화면 속에서 아름다운 관계로 서로 어우러져 행복 에너지를 발산하며 우리에게 관계의 끈을 잡고 평안과 행복을 노래하자고 손짓하고 있다. 작가 김가빈이 차용한 다양한 소재들은 향기로움이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어린왕자가 장미에게 물을 주고 가꾸면서 깨우친 사랑의 교감처럼 작가 자신이 깨달은 삶의 일부로 우주와 자연의 섭리가 연기법처럼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존재자로서의 의미와 가치는 이러한 상생과 공존이라는 특별한 관계인식으로부터 이루어지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 앞에 놓인 존재 또는 대상은 단지 하나의 공간을 차지하며 스쳐 지나가는 몸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체의 의식이 존재나 대상 속으로 스며들어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질 때 존재 또는 대상은 스스로 문을 열고 자신의 의미와 본질을 드러내며 상생과 공존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단순한 서정성을 뛰어넘어 자연의 질서와 변화 속에서 발현하는 본질, 즉 우주 본래의 보편적인 법칙인 상생과 공존의 원리를 심미적 조형의 세계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 감동적인 인식의 변화는 창작의 일과 일상적 삶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평범한 진리의 자각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이라는 소재가 지닌 전통적인 상징성을 뛰어넘어 그 생명력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에 대한 탐구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환기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김가빈은 자연과 자아에 대한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관계인식의 영역을 천지인(天地人)이 조화된 상생과 공존의 유토피아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만물의 이치를 갈무리하고 있는 ‘비움’과 ‘채움’이라는 노장적 덕목을 체득한 김가빈은 이 소중한 가치를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지렛대로 삼으며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관계인식은 결국 나라는 아집의 허울을 벗어버리게 하고 가장 고요한 상태로 마음을 안정시키며 섬세한 감각의 문을 활짝 열어 우주만물과 함께 공존하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연에 대한 관조를 통해 한층 성숙된 김가빈의 선명한 의식세계는 상생하고 공존하는 생명의 에너지로 넘치는 작품세계를 창조하게 만들고, 창작의 주체로서 진정한 자유로움과 벅찬 기쁨을 맛본다. 그리고 자신의 의식세계를 어지럽혔던 허망한 감정의 벽과 어리석었던 관념의 벽을 허물면서 아집에 사로잡힌 오만과 편견 같은 불필요한 찌꺼기들을 내면으로부터 몰아내며 상생과 공존의 아름다운 관계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시간조차 정지된 고요한 마음의 자리에서 꽃비가 축복처럼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온 우주로 향기로운 꽃비를 활짝 피워내기도 하는 것이다. 김가빈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사유공간 속에서 사유의 ‘수렴’과 ‘확산’을 통해 닫힌 자아와 열린 자아의 모습을 상생과 공존을 위한 다양한 조형언어로 표출한다. 이 과정에서 비워내고 비워내도 금새 가득 차버리는 마음의 작용과 담고 또 담으려고 해도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마음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비움’과 ‘채움’의 덕목이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인가를 절감한다. 김가빈이 이번에 선보이는 다양한 시리즈 작품도 이러한 깨달음의 산물이다.
자신과 주변에 대한 성찰과 자연의 섭리와 관계인식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상생과 공존에 대한 김가빈의 욕구는 매우 행복하면서도 절실하다. 칠보와 세라믹의 오브제를 통한 파격적이면서도 강렬한 이미지의 표출이라든가, 석채와 골드, 아크릴의 화려한 색조 등이 어우러진 자유로운 영혼의 랩소디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주제의식과 표현기법들에는 아직 정제되지 못한 거친 모습과 자신의 이성적 사유의 틀 속에 갇힌 듯한 아쉬움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것은 예술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가로서의 삶과 의식이 자연스럽게 일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며, 상생과 공존의 덕목을 지향하는 애정 어린 관계인식들이 전체적으로 활기찬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가빈의 이번 작업은 소재와 주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대한 기존의 이해 및 관계방식으로부터 적극적으로 탈피하여 자신의 예술적 삶과 의식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자연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상생과 공존이라는 관계의 코드를 찾아내 모두의 마음속에 아침 햇살의 눈부신 따스함처럼 황홀하게 꽃비가 내리거나, 맑게 비운 마음의 자리에서 행복한 감동으로 충만한 꽃비를 피워내 온 우주를 장엄하게 장식하는 화엄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 김가빈이 꿈꾸는 유토피아의 세계는 결국 ‘채움’과 ‘비움’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가치전도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이 뒷받침될 때 상생과 공존을 통한 평안과 행복의 랩소디를 흥겹게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